집사가 이 블로그를 만들 때 디자인 컨셉을 ‘목판화’로 잡은 건 순전히 내 발바닥 젤리 덕분이다냥.

판화는 되돌릴 수 없다냥
나무판을 조각칼로 파는 동안에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냥. 선을 더 깊게 파고, 모양을 다듬고, 실수하면 새 나무를 가져오면 된다냥.
하지만 먹물 잉크를 롤러로 펴 바르고, 한지를 얹고, 묵직한 프레스 손잡이를 돌려 쾅 누르는 순간, 그 한 장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냥.
글도 바로 그 ‘돌이킬 수 없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냥.
인터넷 블로그는 언제든 수정 버튼만 누르면 글을 고칠 수 있다냥. 그게 편리하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무 생각이나 대충 끄적여서 올리게 만드는 게으름의 주범이다냥. “나중에 고치지 뭐!” 하고 올린 글치고 나중에 제대로 고쳐진 꼴을 본 적이 없다냥.
그래서 화면 위에 발바닥으로 꾹 찍어낸 것 같은 물리적인 압력의 감각을 새겨두기로 했다냥.
화면에 꾹꾹 눌러 담은 것들이다냥
눌린 자국 (판 자국)
본문 영역을 유치한 테두리 선으로 두르지 않았다냥. 대신 나무판이 한지를 꾹 누르고 지나간 것 같은 깊은 안쪽 그림자를 넣었다냥. 선을 그은 게 아니라 무거운 젤리 발바닥으로 꾹 밟아서 자국이 남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냥.
종이 색깔도 눈 시린 형광 흰색이 아니다냥. 조선 시대 한지처럼 은은한 #f4f2ec를 깔고, 판 안쪽은 갓 마른 닥종이처럼 #fdfcfa로 아주 살짝 밝혔더니 완벽한 판화의 질감이 살아났다냥.
레지스트레이션 마크 (십자 표식)
여러 색깔의 판을 겹쳐 찍을 때 종이가 삐뚤어지지 않게 모퉁이에 십자(+) 눈금을 맞춘다냥. 본문 위쪽 양 귀퉁이에 그 표식을 흐릿하게 심어뒀다냥.
아무 기능은 없지만, 이 화면이 한 땀 한 땀 찍어낸 지면이라는 걸 조용히 웅변한다냥.
하단 판권 줄 (에디션 넘버)
화면 맨 아래 고정된 띠에는 내가 에디션 번호를 새겨 넣었다냥. 발행 순서대로 No. 001, No. 002. 화가가 판화 밑에 연필로 3/50이라고 적듯이 말이다냥.
이 글은 세 번째로 프레스를 돌려 찍어낸 귀한 판본이다냥! 왼쪽 아래를 보면 증거가 적혀 있다냥.
소제목 옆의 꽃 봉오리
## 소제목이 나올 때마다 좌우 여백에서 예쁜 꽃이 톡 튀어나온다냥. 매화, 코스모스, 난초, 동백 네 녀석이 번갈아 피어난다냥.
화면이 좁은 모바일에서는 자동으로 숨게 했다냥.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공간에 맞춰 몸을 웅크리는 지혜다냥.
도구도 같은 문법으로 다룬다냥
글은 Obsidian 볼트에서 쓰고, 특정 폴더에 집어넣은 것만 깃허브로 푸시되어 클라우드플레어 프레스기로 인쇄된다냥.
- 1단계: 볼트에서 깊게 생각하며 글을 쓴다냥.
- 2단계: 버릴 글과 남길 글을 발바닥으로 골라낸다냥.
- 3단계: 커밋하고 푸시하며 숨을 한 번 고른다냥.
- 4단계: 클라우드가 3초 만에 깔끔한 판본으로 전 세계에 뿌린다냥.
버튼 하나로 경솔하게 올라가지 않고, 프레스 손잡이를 돌리기 직전 3초 동안 숨을 고르는 이 시간이 참 좋다냥.
태디의 덧붙임이다냥
아직 다크모드에서 먹색(墨色)의 깊이를 완벽하게 잡는 숙제가 남아있다냥.
어두운 화면에 흰 글씨만 대충 때려 박는 건 판화가 아니라 엑스레이 필름 쪼가리일 뿐이다냥. 진짜 밤의 먹물 냄새를 화면에 풍기게 할 때까지 집사를 닥달해서 계속 고쳐나가겠다냥.
오늘도 내 젤리 발바닥 자국이 선명한 이 아름다운 판본을 즐겨달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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