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dy.life
파란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는 태디. 바닥에는 덮어둔 노트와 연필이 놓여 있다

이런 일요일을 떠올려보자냥.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빨래를 돌리고, 소파에 누워 영상을 몇 개 봤다냥. 창문으로 들어오던 빛이 어느새 반대편 벽으로 옮겨갔다냥. 특별히 나쁜 일은 없었는데, 저녁이 되자 이상한 문장이 올라온다냥.

“오늘 하루는 그냥 날렸네.”

누가 하루를 검사하러 온 것도 아닌데 인간은 먼저 반성문을 쓴다냥. 책이라도 몇 장 읽을걸. 운동이라도 나갈걸. 다음 주 준비라도 해둘걸. 조금 전까지 쉬던 소파가 갑자기 게으름의 증거물처럼 보인다냥.

태디는 그 옆에서 한쪽 앞발을 베고 누워 있다냥. 낮잠 뒤에 결과보고서를 내야 한다면, 고양이는 매일 징계를 받을 것이다냥.

쉬었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고 묻는다냥

산책하고 와서 걸음 수부터 확인할 때가 있다냥. 책을 덮고 읽은 쪽수를 세거나, 여행 사진을 고르다가 올릴 만한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 전체가 아쉬워지기도 한다냥.

기록이 나쁜 것은 아니다냥. 숫자 덕분에 즐거워지는 사람도 있고, 조금씩 쌓이는 흔적이 취미를 이어가게 해주기도 한다냥. 문제는 기록이 없으면 즐거움까지 없었던 일로 처리할 때다냥.

걷는 동안 바람이 좋았다는 감각은 남아 있는데, 목표 걸음 수를 채우지 못했다고 실패한 산책이 된다냥. 친구와 실컷 웃었는데, 생산적인 이야기는 못 했다고 아까운 저녁이 된다냥. 기분 좋게 보낸 시간이 자꾸 다른 성과를 제출해야만 인정받는다냥.

일할 때 쓰던 평가표를 퇴근 뒤에도 접지 못한 모습 같지 않냐냥. 사무실 밖으로 나왔는데, 채점하는 목소리는 가방 속에 따라온 것이다냥.

낭비라고 생각하면, 노는 동안에도 마음이 걸린다냥

이 마음과 맞닿은 연구가 있다냥. 토니에토와 동료들의 2021년 논문은 총 1,310명이 참여한 네 연구에서, 여가를 낭비라고 보는 믿음과 여가의 즐거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봤다냥. 여가를 낭비로 여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즐거움을 낮게 보고했고, 특히 다른 목적 없이 즐기기 위해 하는 활동에서 그 관계가 두드러졌다냥. 실험에서는 여가가 낭비이거나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을 때, 그 자체로 즐기는 활동의 즐거움이 줄었다냥. 연구 초록과 서지 정보

그렇다고 “생각만 바꾸면 누구나 잘 쉰다”는 결론은 아니다냥. 이 연구가 인간 한 명의 피로와 생활 조건을 전부 설명해주지는 못한다냥. 여기서 가져오고 싶은 질문은 작다냥. 나는 지금 쉬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쉬어도 되는 이유를 계속 심사하고 있는지다냥.

몸은 영화 앞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이걸 봐서 뭐가 남지?”를 묻고 있다면, 엔딩이 나와도 심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냥.

내일 잘 일하기 위해서만 쉬어야 할까냥

휴식을 변호할 때조차 인간들은 종종 일 이야기를 꺼낸다냥. 쉬어야 집중력이 좋아지고, 놀아야 아이디어가 생기고, 잠깐 멈춰야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말한다냥.

그 말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겠다냥. 다만 태디는 가끔 순서가 궁금해진다냥. 오늘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해서, 내일의 실적을 담보로 맡겨야 하는 것이냐냥.

노래를 듣는 동안 좋았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저녁도 있었으면 한다냥. 쓸 만한 영감을 얻지 못해도 되고, 다 보고 나서 감상문을 쓰지 않아도 된다냥. 즐거움이 꼭 무언가의 준비 운동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냥.

물론 쉴 틈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마음가짐부터 바꾸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냥. 돌봄과 생계, 밀린 집안일은 생각을 바꾼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냥. 시간이 모자란 문제와, 겨우 생긴 시간을 누리는 자신을 탓하는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냥. 오늘 다루는 것은 후자다냥.

하루를 구제하려고, 밤까지 몰아붙이지 않기

작은 조명과 덮인 노트 옆, 눈을 반쯤 뜨고 파란 러그에서 길게 기지개를 켜는 태디

아무것도 못 한 것 같은 날에는 남은 밤에 뭔가라도 해내고 싶어진다냥.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가 서랍을 전부 꺼내고, 내일 계획을 세우다가 한 달 치 목표까지 적는다냥. 일요일을 만회하려던 일이 월요일의 피로로 넘어가는 장면이다냥.

오늘 저녁에는 평가 문장을 하나만 바꿔보면 어떨까냥.

“오늘 뭘 해냈지?” 대신 “오늘 잠깐이라도 편했던 때가 있었나?”라고 묻는 것이다냥.

따뜻한 물로 손을 씻을 때였을 수도 있고, 배달 온 밥을 첫술 떴을 때였을 수도 있다냥. 아무 장면도 떠오르지 않으면 억지로 감사 목록을 만들 필요도 없다냥. 이 질문까지 새로운 숙제로 만들면 태디가 질문지를 물고 도망갈 것이다냥.

내일 꼭 필요한 준비가 있다면 그것만 하고 끝내도 좋겠다냥. 가방에 열쇠를 넣고, 입을 옷을 꺼내고, 잊으면 곤란한 일을 한 줄 남긴다냥. 남은 밤으로 하루 전체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냥.

쉬는 날은 출근하지 않은 날이지, 더 훌륭한 인간이 되어 돌아가야 하는 시험일은 아닐 것이다냥.

태디는 잠에서 깨면 기지개를 켠다냥. 얼마나 보람차게 잤는지는 묻지 않는다냥. 오늘 너의 하루에도 그런 마지막 동작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냥. 채점 없이, 이만큼 살았으니 몸을 한번 펴는 일 말이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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