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dy.life
파란 이삿짐 박스 안에서 눈을 감고 만족하는 검은 태디.

집사가 퇴사 노래를 듣는다.

아침에도 듣고, 퇴근해서도 듣는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회사에 가는 중이다냥. 인간은 참 신기하다. 나는 싫은 사료를 앞에 두면 바닥부터 긁는데, 집사는 이어폰을 꽂고 출근 도장을 찍는다.

그러더니 오늘은 소연의 퇴사할게여 뮤직비디오를 보여준다.

화면에는 활짝 웃는 소연이 있고, 그 뒤에는 짐이 든 박스를 안은 사람이 있다.

잠깐. 저 박스.

퇴사는 인간이 하는데 입주는 내가 하면 안 되냐냥.

1. 사직서인 줄 알았는데, 나들이 준비였네

소연 퇴사할게여 공식 뮤직비디오 미리보기. 누르면 YouTube에서 재생됩니다.
소연 〈퇴사할게여〉 공식 MV · 기안84 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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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화면부터 보자냥. 선글라스, 활짝 벌린 팔, 박스. 제목만 보고 상상한 비장한 퇴사 면담과는 표정부터 다르다. 책상 정리하다 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드디어 바깥 공기를 맡은 사람의 얼굴이다.

고양이로 치면 이동장 문이 열렸는데 병원이 아니라 햇볕 잘 드는 베란다가 나온 상황이다냥. 그럼 꼬리부터 올라가지.

이 곡은 소연이 9월 7일 발표한 첫 솔로 정규앨범 끝내주는 인생의 타이틀곡이다. 기안84가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제목의 마지막 글자까지 ‘요’가 아니라 ‘여’다. 곡 정보

태디는 저 ‘여’가 좋다.

‘퇴사하겠습니다’라고 쓰면 면담 시간을 잡아야 할 것 같은데, ‘퇴사할게여’라고 쓰면 친구가 일단 웃어줄 것 같다. 결정문보다 먼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말. 오늘 당장 실행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한 번쯤 발을 쭉 뻗어볼 수 있는 말이다냥.

물론 노래를 틀었다고 내일의 출입증이 저절로 반납되지는 않는다.

집사는 후렴이 끝나자 빨래를 널었다. 인생은 뮤직비디오처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주지 않는다냥. 양말은 계속 젖어 있다.

2. 긴 뮤비가 쇼츠에서는 ‘여기 좀 봐’가 된다냥

mmm_kpop이 소개한 소연 퇴사할게여 쇼츠 미리보기. 누르면 YouTube에서 재생됩니다.
@mmm_kpop · 소연 〈퇴사할게여〉 소개 쇼츠
YouTube에서 쇼츠 보기 ↗

같은 노래를 짧게 잘라 소개하는 게시물도 있다. @mmm_kpop의 쇼츠 미리보기에는 녹음실에서 마이크 앞에 선 두 사람과, 목소리의 조합을 좋아하는 반응이 함께 들어가 있다. 긴 뮤직비디오와 달리 ‘이 장면의 이 느낌을 같이 보자’는 방식이다.

태디가 여기서 챙겨볼 건 ‘퇴사’라는 단어 하나가 아니다냥.

사람들이 어느 부분을 잘라서,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가.

제목 때문에 눌렀다가 목소리에 남는 사람도 있고, 밝은 표정에 붙잡히는 사람도 있다. 같은 노래여도 친구에게 보내면서 붙일 말은 달라진다.

나 같으면 이렇게 보낸다.

“너 퇴사하면 평일 낮에도 우리 집에 있을 수 있냐냥.”

이건 위로이자 채용 제안이다. 업무는 문 열기, 간식 주기, 문 닫기, 다시 문 열기. 참고로 대표가 현장에 상주한다. 나다.

3. 웃으려고 눌렀는데 자기 얘기가 튀어나오는 인간들

공식 영상 댓글도 잠깐 내려가 보자냥.

퇴사했던 힘든 시기를 떠올리면서 그때의 자신을 돌아봤다는 반응이 있다. 제목에서 예상한 것보다 노래가 밝아서 계속 듣는다는 반응도 있다. 뮤직비디오의 화면과 의상을 좋아하는 사람도 보인다. 공식 영상과 댓글 보기

다들 같은 마음으로 듣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집사에게는 ‘드디어 그만두는 날’의 노래일 테고, 다른 집사에게는 ‘그만두고 싶었던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는 노래일 수도 있다. 또 누구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듣는다. 고양이 앞에서까지 감상문 제출할 필요는 없다냥.

우리 집사는 웃다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럴 때 얼굴에 앞발을 얹지 않는다. 옆에 앉는다. 앞발은 간식 봉지를 열 때 쓰는 것이다.

농담이고, 인간이 뭐 하나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게 꼭 회사 이름 하나를 지목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냥.

주말에도 휴대폰부터 확인하는 습관.

만날 때마다 “요즘 좀 바빠서”로 시작하는 대화.

쉬면서도 뭔가 놓치는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는 몸.

퇴사라는 단어 안에 저런 것들이 같이 욱여넣어져 있을 수 있다. 박스는 하나인데 짐이 많다냥.

4. 회사 얘기하다가 고양이한테 면접 볼 줄은 몰랐지

여기서부터는 태디가 만든 상황극이다. 실제 댓글을 가져온 건 아니다냥.

친구에게 링크를 보낸 집사

“이거 완전 내 노래.”

그런데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내일 입을 셔츠를 다린다. 준비성이 좋은 건지, 미련이 많은 건지는 모르겠다냥. 나는 둘 다 좋아한다. 따뜻한 셔츠 위에 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그만두고 잠깐 쉬는 집사

오전 열한 시에 거실에서 마주쳤다.

집사는 드디어 여유가 생겼다고 하고, 나는 동선이 겹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햇볕을 받는 시간에 집사가 커피를 마신다. 복지가 늘어난 줄 알았는데 자리 경쟁이 생겼다냥.

아직 뭘 바꿀지 모르는 집사

“회사보다 그냥 요즘 다 싫은 것 같아.”

이 집사한테는 당장 결론부터 내라고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방문 앞에서 나갈까 말까 한참 서 있을 때가 있다. 문을 열어줬다고 반드시 나가야 하는 건 아니잖냥.

다만 문 앞에 서 있다는 건 알아줬으면 하는 거지.

5. 내 인생에도 문 좀 열어달라냥

이 노래를 듣고 바로 사표를 쓰든, 플레이리스트에만 넣든, 오늘 저녁 약속을 하나 잡든. 태디는 그 선택을 대신 해줄 수 없다냥.

대신 그 말이 나오기 직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는 궁금하다.

정말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건지.

지금 하는 일을 다른 환경에서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오늘만큼은 아무한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건지.

셋은 비슷하게 한숨을 쉬지만, 필요한 문은 다르다냥.

쉬는 날까지 잘 쉬어야 한다고 조급해지는 집사라면 〈쉬는 날까지 잘해야 하냐냥〉도 이어서 읽어보자. 퇴사까지 가지 않아도, 쉬는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문제는 이미 시작돼 있으니까.

사표는 아직 안 썼는데, 마음은 벌써 박스 포장 중이냐냥. “이 회사에서 나가고 싶은 걸까, 오늘 하루에서 퇴근하고 싶은 걸까.” 노래는 같은데 내 대답은 날마다 달라질 수 있다.

그럴 땐 아래 〈사표보다 먼저, 내 오늘을 열어보라냥〉으로 가보자. ‘내 운명’에서 내 정보로 풀어낸 오늘의 사주·별자리 카드를 읽고, 오늘의 운세 상세에서 직업·학업 항목도 눌러보는 거다냥. 지금 일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장면을 떠올리며 읽으면 좋겠다.

운세가 집사 대신 사직서에 도장을 찍어주는 건 아니다. 오늘의 나를 한 번 들여다보자는 거지. 나도 새 박스에 들어가기 전에는 냄새부터 맡는다냥. 입주 심사는 의외로 꼼꼼하다.

자, 노래 한 번 더 들을 집사는 듣고.

나는 박스부터 확인하겠다.

집사는 다음 직장을 고민하고, 나는 다음 평수를 고민한다냥.


태디의 관찰 더 읽기 · 사표보다 먼저, 내 오늘을 열어보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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