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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가구와 식물 사이에서 책을 읽는 민희진, Casa BRUTUS 2026년 10월호 표지
01 / COVERCasa BRUTUS · 2026년 10월호사진 송시영 · © Magazine House · 출처 Casa BRUTUS

TREND JOURNAL / CULTURE & SPACE

취향으로 지은 방,
그 안에 쌓인
‘내 것’이라는 마음.

민희진의 집과 서울을 담은
『Casa BRUTUS』 공개 화보에서 출발해,
만드는 마음과 가지는 권한을 생각한다냥.

SEOUL LIFESTYLE GUIDE
OCTOBER 2026 · VOL. 318

잡지 표지 한 장에서 발톱이 멈췄다냥. 회견장이 아니라, 식물과 가구와 책이 놓인 방 안에 민희진이 앉아 있었다냥.

『카사 브루투스(Casa BRUTUS)』 2026년 10월호의 주제는 ‘서울 라이프스타일 가이드’다냥. 9월 9일 발매를 앞두고 공개된 소개에는 민희진의 집과 오케이 레코즈(ooak records) 사무실, 서울의 즐겨 찾는 장소가 담겨 있다냥. 이번 글은 먼저 공개된 사진과 인터뷰를 함께 읽으며 떠올린 관찰이다냥. [1]

표지에는 인물만 있는 게 아니다냥. 파란 의자와 테이블, 식물, 작은 물건들이 시선을 나눠 갖는다냥. 내 눈에는 ‘누구의 집인가’만큼 ‘어떤 선택이 쌓인 집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혔다냥.

거기서 질문 하나가 생겼다냥. 내가 만들었다는 마음과, 내가 가진 권한은 언제부터 다른 이야기가 되는 걸까냥?

취향은 물건보다, 물건 사이에 있다냥

공개된 인터뷰 소개에 따르면 표지의 공간은 민희진이 약 15년 전 처음 마련한 오래된 아파트를 전면 리모델링한 집이다냥. 집을 마련한 시점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그 안을 자기 생활에 맞춰 바꾸었다는 이야기다냥.

그가 설명한 기준은 전형적인 인테리어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자기 생활에 공간을 맞추는 것이었다냥. 소개에는 표지 속 집과는 별개로 현재 생활하는 또 다른 공간도 등장한다냥. 빈티지 가구와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작가의 작업, 책과 레코드, 추억이 담긴 물건이 함께 놓인 방이다냥. [2]

큰 창가에 식물과 책, 색색의 가구를 두고 책상 옆에 앉아 있는 민희진의 공개 화보
02 / SPACE창가의 식물, 쌓아둔 책, 서로 다른 색의 가구. 물건보다 그 사이의 관계를 보게 되는 장면.사진 송시영 · © Magazine House · 출처 CINRA

내가 흥미롭게 본 대목은 물건의 가격표보다 고르는 기준이다냥. 남들이 좋다는 가구를 들이는 일과, 내 생활에 맞게 위치를 바꾸고 오래 쓰는 일은 같지 않다냥. 같은 의자를 사더라도 그 의자 옆에서 쌓이는 시간까지 배송받을 수는 없다냥.

유행을 따라 산 물건이 내 물건이 되는 순간은, 결제 알림이 울린 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냥. 매일 손이 닿고, 불편한 부분을 고치고, 그 자리가 익숙해지는 동안 애착도 자란다냥. 이것은 인터뷰 당사자의 속마음에 대한 단정이 아니라, 그 장면을 보며 떠올린 내 해석이다냥.

‘내 것 같다’는 마음에는 세 갈래 길이 있다냥

조직 연구에는 심리적 소유권(Psychological Ownership)이라는 개념이 있다냥. 어떤 대상이나 그 일부를 ‘내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냥. 피어스·코스토바·더크스의 2001년 논문은 이런 감정이 조직과 일의 여러 대상에도 생길 수 있다고 이론화했다냥. 법적 소유와 구분되는 개념이지, 권리자를 가려주는 판정 도구는 아니다냥. [3]

이 이론에서 제시한 형성 경로는 세 가지다냥. 아래 예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붙인 것이다냥. [3]

애착이 자라는 경로방에서는일에서는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다가구 배치와 쓰임을 직접 정한다작업 방식과 기준을 제안하고 조정한다
대상을 깊이 안다빛이 드는 시간과 불편한 구석을 안다고객 반응과 시행착오의 맥락을 안다
나의 일부를 투자한다시간과 손길을 들여 공간을 고친다아이디어와 노력, 경험을 결과물에 보탠다

그래서 회사가 제공한 작업 도구나 여럿이 만든 프로젝트에도 ‘내가 아끼는 것’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다냥. 애착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냥. 내 것처럼 돌보는 마음이 일의 완성도를 지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냥.

다만 그 마음을 ‘그러니 마지막 결정도 언제나 나 혼자 해야 한다’로 바꾸는 순간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냥. 함께 만든 사람에게도 자기 몫의 애착과 판단이 있을 테니까냥.

집의 애착만으로 회사의 권리를 설명할 수는 없다냥

민희진의 집 이야기를 회사 이야기와 나란히 놓고 싶은 이유는 이해된다냥. 취향을 고르고, 사람들과 작업하고, 결과물의 결을 만드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냥. 하지만 그 비유로 실제 기업 분쟁의 원인을 확정하면 관찰이 단정으로 넘어간다냥.

창작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떤 권리를 보유하는지, 누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지, 누구의 이름을 크레딧에 남기는지는 구분해서 볼 문제다냥. 회사 지분을 가진 것과 개별 결과물의 권리를 가진 것도 같은 질문이 아니다냥. 구체적인 답은 관련 자료와 계약 등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냥.

한 사람의 디렉팅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티스트와 다른 창작자, 실무진의 기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냥. 반대로 회사의 투자와 운영이 중요하다고 해서 개인이 쌓은 감각과 노력이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냥. 특히 아티스트는 누군가가 ‘소유한 창작물’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기여하는 사람이다냥.

그러니 ‘창작자는 전부 만들었고 회사는 자산으로만 봤다’는 구도로는 부족하다냥. 이 글이 묻고 싶은 것은 어느 쪽이 진짜 주인이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여와 권한을 얼마나 분명하게 말해두었느냐다냥.

방에서 도시로, 혼자서 함께로

주황색 목재로 마감한 MOVIE LAND 입구에서 음료를 든 민희진
03 / SEOUL집 밖으로 이어지는 취향. 무비랜드 앞에서.사진 송시영 · © Magazine House · 출처 CINRA
다채로운 선반 앞에 선 민희진과 everyone ok 문구가 담긴 공개 협업 이미지
04 / TOGETHER다른 감각과 만나는 일. ‘everyone ok’의 한 장면.사진 송시영 · © Magazine House · 출처 CINRA

공개 인터뷰에서 민희진은 오케이 레코즈를 음악 한 분야에 한정하기보다, 아티스트와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창작 활동이 이어지는 곳으로 설명했다냥. 이것은 활동 방향에 관한 발언이다냥. 그 말만으로 지분 구성이나 계약상 권한까지 알 수는 없다냥. [2]

같은 소개에는 편집부와의 작업 과정, 오랜 협업자인 사진가 송시영과의 촬영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냥. 혼자 취향을 갖는 것과, 그 취향을 다른 사람과 함께 결과물로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냥.

잡지라는 결과물부터가 그렇다냥. 방을 꾸민 사람, 사진을 찍은 사람, 질문을 고르고 지면을 편집한 사람의 선택이 겹쳐야 독자가 한 장면을 만난다냥. 표지에 한 사람이 등장해도 제작 과정까지 한 사람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냥.

내가 이 특집에서 가져오고 싶은 질문도 여기에 있다냥. ‘내 세계를 얼마나 강하게 주장할까’에 더해, ‘그 세계를 함께 만드는 사람에게 어떤 자리를 내줄까’를 물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냥.

집사들이 미리 나눠야 할 대화다냥

인재를 붙잡는 해법이 무조건 지분 하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냥. 심리적 소유권을 연구한 피어스도 직원 소유제도를 살펴보며, 금전적 몫만이 아니라 영향력과 정보 접근에 대한 기대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설명했다냥. [4]

내가 경영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프로젝트가 잘될 때부터 다음 대화를 해두는 것이다냥.

  1. 무엇을 함께 만들었는가. 한 사람의 공로로 뭉뚱그리지 말고 역할과 기여를 기록한다냥.
  2.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 의견을 낼 기회와 최종 승인 권한을 구분해 서로의 기대를 확인한다냥.
  3. 성과를 어떻게 나누고 이름을 남기는가. 보상과 크레딧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각각 이야기한다냥.
  4. 역할이 바뀌면 무엇을 이어갈 수 있는가. 인수인계와 작업물 사용 범위 등을 미리 확인한다냥. 계약이나 권리 판단이 필요한 부분은 전문가 검토를 거치는 편이 좋다냥.

이것은 모든 회사에 같은 보상 방식을 처방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다냥. ‘주인처럼 일해달라’는 말이 서로에게 어떤 뜻인지, 모호한 채로 남겨두지 말자는 제안이다냥.

태디의 결론이다냥

사람은 자기가 손끝을 보탠 것에 애착을 느낄 수 있다냥. 하지만 애착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기여를 지우거나, 모든 권한을 자동으로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냥.

내가 만든 부분을 인정받는 것. 함께 만든 사람의 몫을 인정하는 것. 실제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아는 것. 이 셋이 가까워질수록, ‘내 일’이라는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냥.

내 방석도 집사가 사 왔지만, 꾹꾹이는 내가 했다냥. 그렇다고 세탁할 때마다 경영권 분쟁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냥. 다만 빨기 전에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냥. 거기 내가 쌓아둔 오후가 있으니까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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